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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4호 2017년 09월 (2017-09-15)

“내 이름은 하민성, 비석에도 새길 것” 마일란 히트매넥 모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모교 첫 외국인 한국학 교수…한국에 ‘조용히 기능하는 민주주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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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란 히트매넥 모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내 이름은 하민성, 비석에도 새길 것”




모교 첫 외국인 한국학 교수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아는가"


2009년 모교 임용 당시 개교 63년 만에 첫 한국학 분야 외국인 교수로 화제가 됐던 마일란 히트매넥(Milan Hejtmanek) 박사. “세계 학계가 조선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상과 문화를 너무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사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힘써온 그가 지난 8월 정년을 맞았다. 모국인 미국을 여행 중이면서 한국을 떠나 향수병을 앓고 있다는 마일란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신분질서와 남녀차별 의식은 그 시대의 교육이 세계사 속에서 점유한 남다른 가치에 비해 국제적 평판이 낮은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오늘날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와 남녀평등 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조선은 ‘배움엔 귀천이 없다’는 뜻의 유교무류(有敎無類)를 포함해 유교의 정수를 품고 있었어요.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엔 신분제가 붕괴되면서 교육의 공정성이라는 문화적 가치가 급격히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마일란 교수는 특히 한글의 힘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영국의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강 하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고유의 문자를 읽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조선후기 민중들의 기본적 문식성이 같은 시기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죠. 한국의 문맹률이 매우 낮은 데에도 한글이 기여한 공로가 큽니다.”


1976년 미국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마일란 교수는 전남 고흥의 보건소에서 2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세계를 탐험하고 지구 반대편에 거주하면서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길 원했던 당돌한 25세 청년이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까닭에 최하위급 보조자로서 기초적인 일을 했지만, 전통적 농민들과 직접 교류했고 한국의 옛 문화를 가슴 깊이 체험했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오래 걸으며 나눴던 얘기들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마일란 교수는 당시 이장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필연적이었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0년대 후반 서구 언론과 많은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한국 사회의 엄격한 위계구조 때문에 박정희 유신 체제가 잘 맞았다는 견해가 거의 보편적이었습니다. 국가적 관료주의 시스템이 지방에도 전파돼 대통령이 직접 군수를 지목하기까지 했죠. 그러나 더 작은 단위에서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장이 마을의 진정한 대변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해 있었습니다. 이장이 될 사람은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고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한국 사회의 저변엔 이미 ‘조용히 기능하는 민주주의(quietly functioning democracy)’가 존재했으며, 언젠가 기회가 오면 도시로 확장될 거라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한민국은 산업화에선 물론 민주화에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업적을 세웠다. 마일란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던 1980년에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한국을 공부하려는 동료 학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국 대학 최초로 한국학 강좌를 설치했던 고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의 친분과 하버드대 재학시절 만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및 고 은 시인과의 인연으로 그는 한국 연구에 열의를 갖게 됐다고 한다. 또한 1990년대부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현재는 하버드대를 비롯한 서구 대학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위해선 외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대에 와서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는 수년 동안 참을성 있게 지속돼야 하므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제로 하죠. 최근 10여 년간 이른바 ‘한류’가 세계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있지만, 교단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쳤던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시골을 찾아 그곳 생활을 겪었던 외국인들이 한국에 더욱 열광적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한국사의 더 깊은 리듬을 이해하려면 콘크리트 정글을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즐기고 역사적 유물을 폭넓게 감상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교에서 국내 최고 수재들을 가르친 그는 2007년부터 8년 동안 경기도의 한 복지관에서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영어교육을 하기도 했다. 학생의 수준을 초월해 배우고 이를 공유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것. 이메일로 받은 답장에 ‘하민성’이란 한국 이름을 적은 마일란 히트매넥 교수는 1976년 평화봉사단의 한국직원이 붙여줬다며, 훗날 자신의 비석에도 그 이름을 새길 계획이라고 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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