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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9호 2016년 06월 (2016-06-16)

동숭로에서 : 남편의 오두막

염정임(독문63-67)수필가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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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오두막
염정임(독문63-67)수필가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몇 년 전 관악캠퍼스에서 은퇴한 후에 남편은 낙성대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 지냈었다. 그 다음에는 조그만 배낭에 노트북을 넣고, 유목민처럼, 여기 저기 별 다방에서 한두 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대학가의 분위기 좋은 곳, 즉 컴퓨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주로 찾아간다. 그의 배낭 안에는 노트북이나 책 외에도 등산 후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등이 들어 있다. 그의 배낭은 마법의 양탄자와도 같아서 노트북을 통해서 대학 도서관을 넘나들고, 모든 지식이나 정보를 저장하고, 꺼낸다. 배낭은 그의 분신처럼 항상 그와 함께 있기에, 나는 그를 ‘망태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3년 전 아예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 경기도의 소도시로 내려왔다. 이곳에 오래 전부터 농장이 있었는데, 관리가 잘 안되어 묘목들이 많이 죽고, 황폐해가는 것 같아 제대로 나무들을 가꾸기로 했다. 몇 년 전에 조그만 조립식 컨테이너를 주문하여 농막으로 써 왔는데, 이제 연구실까지 겸하게 되었다.


작은 집이지만 마주보이는 창문이 있고 현관문이 있다. 지붕의 경사도 안정감이 있어, 집으로서 손색이 없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겨울에는 햇빛이 잘 들어 따뜻하다. 구조는 한 칸으로 단순하다. 장의자와 책상, 의자 서너 개, 그리고 선반 겸 책장이 전부이다.


그동안 잘 돌보지 않아 황폐했던 땅에 쓰레기를 치우고 밭을 일구었다. 봄에는 주로 빈 땅에 묘목을 심고 여름에서 가을까지 그는 풀을 베고, 나무를 소독한다. 그는 새소리를 즐기고 노동으로 땀을 흘린 뒤의 정신의 소쇄함을 즐긴다. 그는 이 오두막 안에서는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온갖 새들이 우짖는 소리를 듣고, 풀 향기에 취하며 그는 자연인으로 회복되는 것 같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나는 이 작은 집을 볼 때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지은 통나무집을 떠올리곤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봄에 미국 콘코드의 남쪽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철저히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그가 주장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하였다. 그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기계적으로 되는 것을 경계하며 자연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원했다.


그의 책 ‘월든’에 보면 그 집은 폭이 10 피트, 길이 15피트, 기둥 높이 8피트라고 쓰여 있다. 나는 그의 오두막이 얼마만 한 것인지 궁금했었다.


어느 날 남편의 집을 재어 보았다. 길이가 약 5미터, 폭은 3.7미터 높이는 약 2.5미터였다. 소로의 통나무집을 미터로 계산하면 길이는 약 4.6미터, 폭은 약 3.1미터 높이는 약 2.5미터이다. 놀랍게도 두 오두막은 크기가 비슷했다. 평수로 계산하면 남편의 조립식 집이 5.7평인 데 비해서 소로의 통나무집은 약 4.2평이었다. 소로의 집이 좀 더 작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낮에만 머물지만, 소로는 그 곳에서 자고 생활을 했으니, 그가 얼마나 절제된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소로는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서, 또 하나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아마 그의 오두막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어떤 날은 스물다섯 사람이 그 오두막에 함께 모였었다고 했다.


남편의 오두막에는 가끔 내가 들르고, 농장 일을 도와주는 친척 K씨, 그리고 농장 한 옆에 밭을 일구고 있는 성당 할아버지가 들를 뿐이다. 그 할아버지는 밭에서 딴 애호박을 볶아 먹으라며 가져다주곤 한다.


이 오두막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는 않지만 컴퓨터를 통해서 옛 학자들이나, 선후배 교수들과도 만나니, 다른 영혼들과 교감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소로의 오두막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저녁에 남편은 밭에서 뱀을 보았다면서 이제 밭이 생태계를 회복한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K씨는 밤에 고라니와 새끼들이 온 것을 봤다고 했다. 산은 이 곳에서 꽤 먼 곳에 있는데, 그들은 찻길을 건너서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일까?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의 묘목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으니 아마 녹색을 찾아 온 모양이다. 짐승들의 삶터가 점점 밀려나서 그들은 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


3, 40년 전에는 이 주위가 온통 배밭이었고 녹색의 정원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근처에 산업단지가 생기면서 주위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녹색은 점점 회색으로 변해간다.


소로는 숲속 오두막에서 2년 2개월을 살고,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 왔다. 남편의 오두막은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문명은 두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웃으면서 인간에게 편리함과 경이로움을 선사하지만, 다른 하나는 무서운 표정으로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인 푸르른 자연을 그 대가로 요구한다.





*염정임 동문은 1986년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 1987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저서로 ‘미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다', ‘유년의 마을', ‘작은 상자, 큰 상자' 등이 있으며 지난 5월 수필집 ‘시간의 아이들’로 제9회 조경희수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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