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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작가의 정원

제 483호 2018년 06월 (2018-06-18)

작가의 정원<6> 윈스턴 처칠의 블렌하임 궁과 차트웰

정치인, 문인, 화가…처칠의 8할을 만든 곳 -가든 디자이너 문현주 동문의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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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정원 <6> 윈스턴 처칠의 블렌하임 궁과 차트웰

정치인, 문인, 화가…처칠의 8할을 만든 곳   




글·사진 문현주(농가정74-78) 가든 디자이너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은 1953년 ‘제2차 세계 대전(1948~1953)’이란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그린 그림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소에 부쳐질 정도의 화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영국의 수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낸 정치인이다. 그런데 그는 멋진 정원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처칠은 정원 역사에서 거론되는 저택에서 태어나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차트웰(Chatwell)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태어난 저택은 옥스퍼드셔(Oxfordshire)의 우드스톡(Woodstock)에 있는 블렌하임 궁(Blenheim Palace)이다. 이 궁은 왕이 살던 곳은 아니지만 ‘팰리스(palace)’의 명칭을 사용한다. 그의 할아버지 말버러 공작(John Churchill)은 1704년 블렌하임에서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을 대파한다. 이에 앤 여왕은 승리를 치하하기 위해 왕실의 부지를 하사하고 대저택을 지어 블렌하임 팰리스(Blenheim Palace)란 명칭을 내려준다. 그때부터 이곳은 300년 이상 처칠 가문의 저택이 된다.

블렌하임 궁은 18세기 영국의 정원 양식인 풍경식 정원을 대표하는 정원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발달한 평면기하학식 정원에 반하여 영국은 정원을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할 수 있게 꾸미는 새로운 정원 양식을 만든다. 이곳은 입구에서 저택까지 오래된 느릅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운하 건너편 언덕에 말버러 공작의 승전 기념탑이 멀리 보인다. 저택 왼쪽에는 일부 자수화단과 분수대가 있는 평면 기하학식 정원이 남아 있으나 그 너머 두 개의 자연스러운 인공 호수와 드넓은 정원이 마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처칠은 7살이 되어 기숙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곳은 차트웰이다. 그는 1922년 허름한 시골집을 사서 몇 해 동안은 주말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마지막 40여 년간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차트웰은 런던 시내에서 남쪽으로 4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켄트 지방의 웨스터햄(Westerham)에 있다. 대저택으로 들어서면 우선 넓게 구릉이 펼쳐진다. 그리고 저택 앞에 마치 처칠의 모습처럼 우람하고 큰 나무가 서있다. 주택은 언덕 위에 위치하여 앞쪽으로 테라스를 조성하였다. 그곳에 앉으니 구릉과 연못 그 너머 광활한 초원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멀리까지 시선이 날아간다. 

정원은 주택 옆으로 담을 쌓아 그 안에 텃밭과 화단을 조성하였다. 처칠은 직접 담을 쌓고 그 안에 정원을 가꾸었다. 더구나 그의 벽돌쌓기 실력은 건축업 노동조합에 정식으로 가입한 정도로 능숙했다고 한다. 화단 중앙에 ‘노란 장미길’이 있다. 이 장미는 1958년 처칠 부부의 금혼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자녀들이 선물했다고 한다. 특히 처칠 부인인 클레멘타인은 꽃꽂이를 즐겼으며 집안을 장미꽃으로 장식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차트웰 정원에는 1,000그루가 넘는 장미가 있다. 

나는 장미 화단이 있는 정원을 지나 처칠이 산책했던 길을 따라 걸어 본다. 초원으로 이루어진 구릉을 내려와 연못을 끼고 돌아서니 처칠 부부의 동상이 다정한 모습으로 멀리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지금도 영국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차트웰은 지금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처칠은 총리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이 대저택과 정원을 유지 관리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이곳을 구입하여 처칠 부부가 살아 있는 동안 차트웰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1년 뒤 1966년부터 차트웰은 일반인에게 공개하게 된다. 

처칠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진에서 본 시가를 물고 있는 무서운 얼굴과 런던 국회의사당 광장에 서있는 긴 코트에 지팡이를 짚은 고집스럽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동상이었다. 이제 나에게 그는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화단을 손질하고 있는 부드럽고 친근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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