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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2호 2017년 07월 (2017-07-13)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 인터뷰

“나눔이 버는 것보다 더 큰 기쁨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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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을 찾아서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

“나눔이 버는 것보다 더 큰 기쁨 주죠”


‘양돈업계 대부’로 불리는 윤희진(축산63-67) 다비육종 회장은 사회 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최근 한돈혁신센터(대한한돈협회) 건립기금으로 1억원, 일가재단 1억원 기부를 비롯해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 단체, 학교에 10억원 이상의 기금과 현물을 기부했다. 새터민 자립을 위해 농장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총동창회에 장학빌딩 건립기금 1,000만원을 비롯해 지난 20여 년간 회비와 찬조금을 한 해도 빠짐없이 보내왔다. 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6월 26일 안성 다비육종 본사에서 윤 회장을 만나 나눔 철학과 40년 양돈 외길 인생에 대해 들었다.

국내외 단체에 10억원 이상 기부
‘작은통일’ 위해 새터민 지원 전념

-지금까지 후원해 준 곳이 30여 곳이 넘어요. 한 번에 한 곳을 크게 도와주면 주목받을 수 있을 텐데요.
“도움이 필요한 곳이 보일 때마다 후원을 하다 보니 여러 곳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주목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기부를 생활화 하게 된 배경이 있으세요.
“좋은 대학 나와 좋은 기업에서 일을 배워 30여 년간 사업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하나님의 큰 은혜라 생각해요. 받은 자로서 갚아야 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살다가 지난 2010년 회사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사회 공헌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나눔이 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주더군요.”

-사회 공헌 활동 하시는 분들은 종교적인 영향을 받거나 천성적으로 이타적인 성품을 타고 난 듯해요.
“부모님한테 그런 DNA를 물려받은 것도 있는 것 같네요. 돌아가신 모친이 교사 정년 퇴임 후 불교대학을 다니시면서 ‘이타회’를 조직하셨어요. 위안부 할머니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셨지요.”

윤 회장은 모교 후배들을 위해서도 많은 후원 활동을 했다. 업계 동문들과 힘을 합쳐 동물자원학과 후배들에게 주택형 기숙사를 마련해주거나 상록문화재단(농생대), 국담재단(동물자원학과) 등에 거액의 기금을 출연해 장학금을 지원했다.

윤 회장의 ‘나눔 바이러스’는 축산업계 지인들에게까지 퍼져 기부문화 확산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손녀에게도 연말이 되면 자선냄비에 직접 봉투를 넣도록 하며 기부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도와달라는 곳이 많아 난감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없지 않지요. 요즘은 새터민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새터민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지.
“2005~2007년 통일농수산사업단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종돈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3차에 걸쳐 종돈을 보내줬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첫 새끼를 낳아 우리는 통일돼지로 이름을 붙였는데 저들은 ‘월북돼지’라 부르더군요. 북한의 핵실험과 동시에 사업이 중단됐지만 북한 실정과 통일에 대한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박세일 교수님의 선진통일전략이라는 책을 읽고 북한, 통일 관련 세미나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분당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님의 통일 비전에 대해서도 감명을 받았고요. 새터민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르잖아요? 여기 와 있는 3만 새터민이 잘 정착해야, 이를 작은 통일이라 부르는데, 큰 통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새터민을 어떻게 돕고 계시죠? 재단을 만드셨나요?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신 김용기 장로님의 뜻을 기리는 일가재단(이사장 손봉호)이라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재단에 통일장학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주변분들과 기금을 모아 탈북학교와 대학생 15명 내외를 지원하고, 3업(학업·취업·창업)을 돕는 일이 우리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탈북 학교들을 돕는 일에 써 달라고 1억원을 기부했어요. 재단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좋은 재단을 통해 돕는 게 효율적입니다. 여명학교나 겨레얼 학교 등에 매주 돼지고기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북한 출신 학생들이 어려서 잘 못 먹은 대신 잘 먹고 튼튼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또 대학 생활이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링 활동을 저나 지인들을 통해 해주고 있고요. 몇몇 친구들에게는 농장 일을 가르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기도 했지요. 통일 되면 이들이 북에 가서 축산기술전수 또는 사업성공을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목숨 걸고 남한에 온 새터민 중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평균보다 4배 정도 높습니다. 소득도 우리나라 평균의 3분의 2밖에 안 되고요. 이들이 잘 정착해야 북쪽 사람들도 남한을 우호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북한 정권 상대보다는 주민들 마음을 얻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삼성 입사하며 돼지와 첫 인연

윤 회장이 기쁨으로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바탕은 종돈(씨돼지로 새끼돼지를 낳는 어미돼지와 수퇘지를 말함) 사업이다. 1968년 축산업 진출을 계획하던 삼성에 입사해 용인자연농원 양돈부 책임관리자로 돼지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선진축산그룹을 거쳐 1983년 다비(多肥)육종을 창립해 국내 최고의 종돈 회사로 키웠다.

-삼성에서 돼지 사업을 했다니, 새롭네요.
“당시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에게 축산업에 투자할 것을 권유하면서 삼성그룹 차원에서 축산업 진출을 본격 추진했어요. 이병철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이제부터 삼성그룹의 신규사업은 전자산업과 축산업’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1968년 삼성그룹에서 서울공대, 농대 출신들을 특별채용 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직접 면접을 거쳐 운 좋게 선발됐지요. 그러나 실제 축산업이 시작된 것은 1973년 용인자연농원 양돈장 건설이 본격화되면서부터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챙겨가며 돈사 100동을 짓고 종돈은 일본에서 수입해 왔어요. 그때 관리 책임자를 맡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국내에는 참고서가 없어 일본 양돈 관련 책인 ‘양돈대성(養豚大成)’ 등으로 공부하기도 했지요. 1989년 용인양돈장은 이병철 회장이 떠나시고 시대적 흐름 등 여러 이유로 폐쇄됐습니다만, 이병철 회장의 손자인 CJ 이재현 회장이 중국-동남아에서 사료양돈사업을 크게 하는 게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돼지가 지저분한 가축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냄새 등 힘들지 않으셨어요?
“돼지는 개보다 영리하고, 습성이 깨끗하지요. 직업을 사랑하다 보니 힘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분뇨도 비료로 이용하거나 생물학적 처리를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실습 온 대학생들이 생각보다 깨끗해 놀라기도 합니다.”

윤 회장은 “밤에 돈사에 들어가 보온등 아래 새끼돼지들이 포개어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다”며 “돼지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양돈 산업은 어떻습니까.
“최근 몇 년간 산업 발전 단계로 보면 완숙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양돈 매출액 6조 8,000억원으로 농업부문에서 1위가 됐습니다. 쌀 산업을 앞지른 것이죠. 국내 돼지 사육 두수는 1,000만 마리 정도 됩니다.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되고요. 한 양돈가가 평균 2,500두를 키워 연매출 16억~20억원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정도 관리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3~4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분야로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방역문제, 환경문제 등으로 농장 허가가 까다로워 진입장벽이 높지만 그렇다 보니 기존의 농장들에게는 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죠.”

-국내 축산업이 완숙기라고 하셨는데, 내려간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 같습니다.
“국내 시장은 한계에 왔습니다. 당분간은 국내 소비가 받쳐 주겠지만, 축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다비육종이 2005년 CJ와 함께 베트남 종돈 시장에 첫 진출했고, 최근에는 하노이 인근에 새 종돈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료업체들이 중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순서로 투자해 동남아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동남아가 고기수요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동남아 진출에는 우리의 축적된 기술을 이식해 농축산업 발전을 돕는다는 의미도 큽니다.”

-축산 선진국인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와 비교해 경쟁력은 있습니까.
“많이 떨어집니다. 우리 회사의 종돈이 선진국 수준인 한 해 어미돼지 두당 31두까지 새끼를 키워내는 등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평균은 21두밖에 안 됩니다. 지금 덴마크의 경우 40두 이상 기록하는 농장도 생겼습니다. 차이를 따라잡기 쉽지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 돈군 사이즈가 작고 기술력이 떨어져 종자개량이 늦고, 질병이 많습니다. 또 행정부서 공무원들이 너무 자주 바뀌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던 요인도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역할도 큰데 오랫동안 신용사업에 치중했다든가 지역축협, 업종조합, 중앙회 사업으로 3원화 되어 있는 것도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덴마크는 과거 100개 넘는 양돈조합을 하나로 통합해 지금 세계 최고의 축산업 국가가 됐죠.”

-사업을 해 오면서 구제역 등 위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
“1998년 IMF사태 이후와 2002년 구제역 파동 때 많이 힘들었죠. 외국서 기자재를 리스로 들여와 증설했는데 환율은 뛰어오르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다운되다 보니 종돈은 안 팔리고 해서 어려웠습니다. 2002년 월드컵으로 남들은 한창 신나 있을 때 안성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해, 전문지에 ‘국내 최대 종돈장 구제역 감염’ 보도 등으로 자존심이 상해 ‘정말 접어야 되나’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버티었죠. 위기가 기회라고, 그 일을 계기로 종돈 사업장을 전국 여러 지역으로 분산시켜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미국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돼지가격도 뛰어 점점 회복해 나갔고요. 고난은 축복이란 선물을 싸고 있는 포장지란 생각이 듭니다.”

-즐겨먹는 돼지 부위가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삼겹살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 저지방 부위를 선호합니다.”

-돼지꿈을 많이 꿨을 것 같은데.
“(웃음)돼지를 하도 많이 보아서 그런지 딱히 떠오르지는 않네요.”

-경영일선에서도 물려나셨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최근 김형석 교수님의 책에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까지’라고 하셨더군요. 그런데 운동, 피아노, 브릿지 게임까지 만능이었던 아내가 9년 전부터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며 한창 좋은 시기를…. 고생하는 아내를 간호하는 일과 ‘작은 통일’ 이뤄 가는 데 열심을 다해야죠.” 김남주 기자

국내 종돈 4분의 1 공급…한국 양돈 산업의 거목

1세대 양돈인으로서 끊임없는 성장동력 제공을 통해 산업 발전을 주도해온 한국 양돈산업의 거목이다. 우리가 풍족하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의 역할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농가에 한두 마리 돼지를 키우던 시절인 1968년 전자산업과 축산업을 양대 신규 투자 사업으로 삼은 삼성에 입사해 용인자연농원 양돈부에서 관리 책임을 맡았다. 7년 후 제일종축농장(선진축산그룹 모태)으로 자리를 옮겨 계열화 사업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다. 만 40세 되던 해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다비육종을 세워 국내 종돈사업에 새 길을 개척했다.

2005년 금강산 지역에 분단 후 처음으로 종돈을 보내었고 같은 해 한국 축산업계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넓히는 동시에 베트남 양돈산업 발전에 일조했다.

대외적으로는 관제조합만 있던 우리나라에 돼지농장 주인들이 주도하는 최초의 계열화업체인 도드람양돈사업회를 만들어 회장을 지냈고, 전국양돈세미나를 개최하며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해 ‘한국양돈사’를 다시 썼다. 민간방역본부의 전신인 ‘HC비대본(돼지콜레라박멸비상대책본부)’을 만들었으며 축산박람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박람회의 격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다비육종은 국내에서 출하되는 연간 1,600만두의 돼지 가운데 4분의 1인 약 400만두 분에 해당하는 종돈과 인공수정용 정액을 공급하는 국내 최고의 종돈업체이다. 종업원 220여 명이 근무하며 지난해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양돈업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린다.

윤 회장은 2010년 민동수(수의학81-85) 사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사회 공헌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젊어서부터 직원과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등 늘 겸손한 자세로 귀감을 사고 있다. 좌우명은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 최근에는 수분지족(守分知足 분수를 지켜서 만족할 줄 안다)을 지키려고 애쓴다. 틈틈이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쌓는다. 정부로부터 동탄산업훈장, 제17회 일가상, 제1회 축산공로상, 제7회 상록인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대한한돈협회 고문, 일가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부인 박영숙(농가정65-69) 동문, 장남 윤성규(화학90-94) 동문, 맏며느리 홍정은(화학94-98) 동문 등 전형적인 서울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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