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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6호 2018년 09월 (2018-09-14)

동숭로에서 : 관수재 일기(觀水齋 日記)

우한용 모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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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로에서


관수재 일기(觀水齋 日記)



우한용
국어교육68-75
모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소설가


관점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은 가지가지이다. 관수재 신무한이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은 로망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였다. 로망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이고, 로망이 없는 치들은 인간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다. 강희안의 ‘고사 관수도’를 자신의 로망으로 설정하고 있는 신무한은 시인이기도 했다. 관수재라고 자호(自號)를 해두고, 자기 밭 가장자리에는 정자를 세우고, 정자 아래에는 연못을 파서 잉어도 몇 마리 넣었다. 

 
관수재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이라지만 아직 미명이었다. 하현달이 별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기울어가는 달을 좀더 바라보려고 나무 계단을 밟아 뜰로 내려서는데, 인동꽃 향기가 물큰 앞자락으로 다가들었다. 아내의 몸에서는 인동꽃 향이 풍겼다.


인동꽃 향기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달무리까지 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향기는 달을 지나 별무리 사이로 흩어져갔다. 시라는 게 이런 감각을 언어로 포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미명에 향기로 내는 길… 달을 지나 별에 이르는 그런 길을 내는 일이 시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찾아, 그 길 위에다가 자기 언어의 징검돌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관수재의 로망 가운데 하나인 셈이었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동녘이 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어서 불볕이 내리리라. 낮에는 기온이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혹서가 한 달째 계속되었다. 관수재에게는 더위보다는 이 더위에 잉어들이 견뎌낼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연못을 만들고 나니 연꽃을 보고 싶었다. 관수재는 백련 두 뿌리를 연못에 심었다. 올해는 하도 더워 그런지 연잎 두어 가닥이 올라오고는 그만이었다. 연이 무성하면 잉어가 그 그늘에 지느러미를 흔들면서 노닐 거라는 기대는 간데없이 되어버렸다.


연못으로 가는 길은 지심이 짙었다. 할머니는 밭에 나가면서 지심맨다고 했다. 할머니 적삼에서는 소금기 밴 땀냄새가 짙었다. 너는 밭고랑에 청춘을 묻지 말라는 게 할머니가 흙묻은 호미를 씻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관수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연못에 단청 고운 목어 한 마리가 하현달처럼 떠 있었다. 가슴으로 쿵하니 동계가 몰려왔다. 관수재는 연못가에 마름 건져낸다고 놓아둔 뜰채를 집어들었다. 뜰채로 조심스럽게 잉어를 건져올렸다. 목어의 눈처럼 박힌 눈알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밤에도 눈을 뜨고 불법을 지킨다고 해서 목어가 만들어진 게라고, 고불 선생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뜰채를 든 채, 관수재는 언덕을 밟고 정자로 올라갔다. 언제 날아왔는지 왕벌이 위잉, 소리를 내며 관수재의 머리 위로 선회했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농과대학 동료 한 사람이 벌초하러 갔다가 벌에 쏘여 죽었다. 지난 주의 일이었다.


깔때기가 귀때기에 앵앵거리면서 달려들었다. 관수재는 손을 저어 깔때기를 쫓았다. 이어서 벌 한 마리가 뒤통수에 와서 잉잉거렸다. 정자 천정에 박통만한 벌집이 달려 있었다. 관수재는 잉어를 정자 바닥에 가만히 쏟아 놓고는, 뜰채를 들고 살금살금 벌집을 향해 다가갔다.


관수재가 뜰채를 휘두르는 순간 벌떼가 달려들었다. 혼비백산해서 뜰채를 집어던지고 달아나는 관수재의 머리위로 벌떼가 범벅이 되게 엉겨붙어 공격했다. 관수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겨우 일어났다.
인동꽃 향기와, 죽은 잉어와, 벌떼의 공격을 한 편의 시로 엮는 작업을, 그날의 자연은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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