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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7호 2018년 10월 (2018-10-15)

조국의 미래를 관악에 묻는이 이제 없지만…

김병종 모교 미대 명예교수, 교수정년식 대표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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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조국의 미래를 관악에 묻는이 이제 없지만…




김병종
회화74-81
모교 미대 동양화과 명예교수


시인 김남조 선생의 ‘사랑’ 연작시에 이런 짤막한 구절이 있다. “사랑은 농사, 가장 일찍 씨 뿌려 가장 늦게 거두는 농사.”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교육 혹은 연구나 창작이라는 말을 넣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경우든 농사에 들어가는 수고와 돌봄,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벼 수확을 낸 다산 왕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토록 많은, 그리고 질 좋은 소출을 거둘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이는 벼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라는 인상적인 대답을 했다.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은 농부로서의 자리를 지켰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오늘 대학을 떠나는 우리 또한 교육과 연구의 농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지만, 어쨌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육 농사꾼’의 자리를 지켜온 것만은 사실이다. 서글프게도,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자기 일에 눈을 떼지 않았다는 이 평범한 사실조차 오늘날처럼 복잡다단하고 유혹이 많은 시대엔 지켜내기 어려운 덕목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농사는 시간의 산물이다. 뜨거운 햇빛과 세찬 비바람의 시간을 견뎌내며 열매 맺는 일이다. 우리는 뭔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서 돌아보면 벌써 저만치 과거가 돼버리고 마는 광속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농사만은 시간을 건너뛸 수가 없다. 사실 교육 농사꾼이 제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만큼 관악의 세월은 신산한 아픔과 상처, 비바람의 세월이기도 했다. 때론 조용히 앉아 연구실을 지키는 일이 무능이나 비겁에 가깝게 비춰지기도 했으므로. 

그런데 민주화의 열망과 조국의 미래 비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요즘 이 대학 구성원들을 새로이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인접 국가는 이미 20개가 넘게 받아왔건만 나라로부터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면서 서울대는 대체 뭐 하느냔 힐책이다. 노벨상의 계절이 오면 우리는 소출을 못 내는 형편없는 농부가 되어 주눅이 든다. 그러나 그 인접국가의 국보 가운데엔 반가 사유상처럼 우리나라에 이미 원형이 있는 것들이 많고, 그들의 전통으로 애지중지하는 ‘사스마야끼’와 ‘아리다야끼’도 실은 끌려간 조선 도공 심수관과 이삼평으로부터 비롯됐다. 요컨대 창의성이나 두뇌가 특별히 우수해서 그토록 상을 주렁주렁 몰고 오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변수가 있다면, 우리가 쟁이 기질이라고 폄하했던 그들만의 집요한 오타쿠 기질 같은 것이 학문 영역에까지 스며들어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농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햇빛에 익고 바람에 향기를 머금어가는 과일을 따기보단 물량을 퍼부어 속성 재배로 결과를 내려 조바심을 친다. 학문 영역에까지 이런 조급증이 확산되고 시장의 논리가 휩쓸어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통폐합의 칼이 휘둘려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농부는 제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진다.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부박한 문화는 
대학 고유의 묵직한 아카데미즘마저 
블랙홀처럼 빨아들여버려 

어느 외국 언론이 오늘의 한국인을 다른 행성에서 온 신인류라고 했을 만큼 우리는 경이적이고 눈부신 실적을 내고 있다. 변방의식을 완전히 벗어나 세계문화의 주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나 명암이 있듯, 속도 열차에 탄 IT강국의 새로운 시민들은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도 많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이크가 주어져서 때로 의로운 함성이 되어 지축을 울리기도 하지만, 방향 없는 분노와 소음으로 떠오를 때도 많다. 작고 진솔한 목소리를 덮어버릴 뿐만 아니라 훈훈하고 따뜻한 관계들마저 왕왕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의 상태로 몰고 간다. 오늘날의 이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부박한 문화는 대학 고유의 묵직한 아카데미즘마저 블랙홀처럼 빨아들여버린다. 누가 이 질주하는 과속열차와 살벌한 무한경쟁의 문화를 제어할 수 있을까, 농부의 농부 된 자리를 드높은 자긍심으로 지키게 할 수 있을까. 

선배 교수들의 고별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가 하나 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시다. 지난 세월 우리 모두는 연구나 교육 못지않게 나라와 민족, 조국의 미래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서도 답변해야 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조국의 미래 같은 것을 관악에 묻는 이가 없고, 오히려 이곳은 자주 비아냥과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구성원들의 의식 속에선 이 시의 구절구절이 아직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민주화의 열망 못지않게 이젠 천박한 속도 문화와 즉물주의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에 나는 우리를 교육과 연구의 농사꾼이라고 했지만 사실 떠나는 우리뿐 아니라 남아있는 후학들도 농부라는 점에선, 그리고 끌과 망치를 가지고 자기 앞의 삶을 쪼아가는 삶의 조각가라는 점에선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훌륭한 농부, 뛰어난 조각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앞에 예로 든 다산 왕처럼 바로 눈앞의 오브제에 대해 눈을 떼지 않는 일일 것이다. 번쩍이고 떠들썩하며 화려하게 지나가는 풍경에 잠시라도 눈길을 빼앗기는 순간, 들어올렸던 망치는 자기 손을 향해 내리쳐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명 시인으로 열었으니 한 무명 시인의 시로 내 얘기를 갈음한다. 

이곳이 차마 그리움의 대상이 될 줄 몰랐구나. / 용서해다오. /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서툴렀다. / 차마 그대와 내가 연결 되어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 꽃은 스스로 피고 지는 것으로만 알았다. / 홀로 빛나는 별이 없고 저 혼자 아름다운 꽃이 없건만 / 나는 여린 순을 움트는 그대들의 손잡아 일으키는 선한 농부가 되지 못했구나. / 이제는 살갗처럼 되어버린 교수라는 낡은 옷 한 벌 벗어놓고 / 석양 저편으로 걸어간다. /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여 우정이여 사랑이여 / 이제 어둠속에서나마 나는 그대들 쪽으로 손을 내밀고 / 그대들 또한 내 마른 손을 잡아 / 그렇게 온기를 나누고 싶구나. / 아우성처럼 무성하라 / 그대들 관악의 젊은 꽃들이여. / 늘 그러했듯이, 어두운 시대의 / 불꽃이여.

엊그제 밤에 내가 쓴 시다.
                                                                                   

*이 칼럼은 지난 8월 31일 교수정년식 때 김병종 모교 미대 명예교수의 대표 인사말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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