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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0호 2018년 03월 (2018-03-15)

여자라서 배려한다?

김영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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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배려한다?



김영희
고고미술사88-92
한겨레신문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지금 맡고 있는 팀은 저녁에 전문가들 모시는 일이 많아요. 상대방은 으레 밤늦게까지 자리가 계속되는 걸로 생각하고 나오니 남자 직원들에게 밤 10시만 되면 여자 직원들은 무조건 들여보내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만난 한 검사가 말했다. 늦은 밤길, 택시 태우기도 불안하니 여성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밤 10시는 ‘초저녁’ 취급하던 내 과거 회식자리를 돌이켜보면, 참 좋은 상사구나 싶었다. 검찰처럼 상명하복으로 똘똘 뭉친 권위적 조직에서도 이러니 세상 정말 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얘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저도 일하는 아내가 늦게 오면 밤늦게까지 아이 준비물 챙기고 그러는 거 보니까요.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는 평소에 남성직원들을 더 거칠게 대하는데 혹사까지 시켜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덧붙였다.

“여자들이 바라는 건 여자라서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밤 10시면 자리를 뜰 수 있는 문화 아닐까요?”라고 말하며 넘어갔지만, 속으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나 같으면 아예 늦게 들어가 그날만이라도 아이 챙기기 면제되길 바랄 텐데.’ ‘아내가 올 때까지 왜 남편은 손 놓고 있나.’ ‘이러니까 부서에 여자가 늘면 남자들 일만 많아진다는 소리가 나오지.’

얼마 전 지난해 합계출산율 1.05명이라는 암울한 수치가 발표됐고, 저출산의 주요 대책 중 하나로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문화가 거론된다. 육아휴직 확대는 물론 시간선택제, 연차사용 활성화 등에 나서는 기업들도 늘었다. 그런데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모든 게 해결될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유연근무제 도입 이후 여성은 75.8%가 남은 시간을 육아에 쓴 반면 남성은 46.5%만이 할애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뜩이나 가사노동과 육아 등이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남녀가 여유시간마저 동등하게 활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해외에선 여성 고용률이 올라가면 출산율도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독 한국에선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이라 불리는 30대 여성들의 분노와 절망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우리 사회, 많이 변했다. 집안일을 ‘돕는’ 남성들도 늘었다. 그런데 여성들은 더 많이 변했다. 특히 지금 여성들은 대학진학자가 드물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고학력세대다. ‘너만 똑똑하고 성실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다. 모교 출신 여성동문들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에 실린 기사에서 한 30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 하는데 너무 화가 났어요.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걸 엄청 후회하거든요.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니까요. 사회적 인식은 바뀌지 않았는데 여자만 쓸데없이 교육을 많이 받아서 고통을 겪는구나 싶어요.”

또 다른 30대 여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어 옴짝달싹할 수 없어요. 남편은 자기가 직장동료나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가정적인 남자라고 주장해요. 나한테는 턱없이 부족한데 말이죠.”라고 말했다. 저출산 현상은 삶의 질 저하나 청년세대가 희망을 잃은 게 큰 요인이지만, 이런 여성들의 분노와 절망의 반영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니 아무리 여성들을 ‘배려’해도 보수적인 성역할 구분이 그대로인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동(돈버는 일)과 돌봄(가사나 육아)은 성별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안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밤 10시면 여자들은 보낸다’는 그 검사의 방침이 ‘선의’임을 알면서도 마냥 웃을 수 없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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