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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동문을 찾아서

제 482호 2018년 05월 (2018-05-16)

가정의 달 특별인터뷰: 독문과 60학번 동기 부부 김광규 시인·정혜영 번역가

“부부는 가끔 싸워야지 너무 안 싸워도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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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가끔 싸워야지 너무 안 싸워도 문제입니다”

독문과 60학번 동기 부부 김광규 시인·정혜영 번역가



지난 가을 결혼 50주년 맞아
아들 부부도 학과 동기
대학, 직장까지 함께하며
둘도 없는 반려

“시인의 언어는
독자의 언어와 접점 있어야”
제30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광화문 교보문고에 시 걸려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김광규 ‘오래된 물음’ 중’. 이 봄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걸린 시구다. 김광규(독문60-64) 동문은 올해 희수(77세) 겸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축하하는 걸까. 전국 교보문고에 그의 시가 걸리고 최근 충북 옥천군으로부터 정지용 문학상을 받았다.

4월 19일이면 회자되는 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인터뷰의 단초가 됐지만 그를 만나면서 부부 이야기에 끌렸다. 5월은 가정의 달 아닌가. 김 동문 부인은 정혜영(독문60-64) 동문. 과 동기 커플이다. 장남 부부도 모교 경영학과 90학번 동기인 김진우, 김혜성 동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김광규, 정혜영 동문이 직장까지 같았다는 것. 부부는 한양대 독문과에서 같은 해 정년퇴임을 했다. 4월 26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카페에서 김광규 동문을 만났을 때도 정혜영 동문이 함께했다. 정 동문은 먼저 와 기자를 맞아주며 “김광규 선생의 접대 상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부부 인터뷰로 진행됐다.


-각별한 인연이세요.
“친구들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요. 대학 때부터 한 여자에게 잡혀 50년 살았다고.(웃음)” 정혜영 동문은 잡혀 살았다는 표현에 핀잔을 줄 법도 한데 “살기만 했나 직장까지 쫓아다녔으니”라며 함께 웃었다.
-장남도 경영학과 동기와 결혼을 했네요.
“우연이죠. 아들들이 대체로 말을 잘 안 듣는데, 이건 흉내를 냈어요.”(정혜영)

-당시 독문과에 여학생이 몇 명이었나요?
“우리 학년에는 25명 중에 3명. 그 다음 학년에는 한 사람 들어왔어요. 문리대에 여학생이 조금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드물었죠. 그때 여학생들 보고 희귀동물이라고 했어요.”(정혜영)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나요.
“당시는 여자가 먼저 그런 말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예요. 남녀칠세부동석 시대라 서로 내외했죠. 경어를 썼으니까요. 여학생들의 인기가 많았어요.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김광규는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문리대 여학생과 결혼을 했다’고.” (김광규)

-결혼은 언제 하셨죠.
“1967년, 9월에 했어요. 김 선생님이 학교 졸업하고 3년 군대 갔다 온 뒤죠. 춘향이처럼 기다렸죠.”(정혜영)

-어떻게 같은 학교에서 일하게 됐어요?
“김광규 선생이 부산대에 재직할 때 저는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일했기 때문에 나중에 EBS 독일어 강의를 하게 됐어요. 한양대에서 먼저 김광규 선생에게 제안이 왔고 저는 한 해 뒤 부임했죠. 1980년대 초 졸업정원제가 시행돼 갑자기 대학 정원이 늘어나면서 교수가 많이 필요했어요. 한양대 본교와 안산캠퍼스 양쪽에 독문과가 신설됐는데, 우리는 안산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같은 학과에 있다 보니 제가 굉장히 조심을 했어요. 다행히 학생, 동료 교수들과 잘 지내며 무사히 정년퇴임할 수 있었죠.”(정혜영)

-동기 모임을 두 분이 주도하셔야겠어요.
“몇 몇 친한 동기들과 모임을 갖고 있지만 전체 모임은 못 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동창회 총무를 맡은 적이 있어요. 김광규 선생이 한독문화교류를 15년간 이끌어 왔는데 그 사무 일까지 제가 하다 보니 동창회 일에 소홀하게 됐네요.”(정혜영)

김광규 동문은 “나는 일을 시킨 적이 없다. 이 사람이 답답해서 참지 못하고 한 거지. 지금도 타자 두드리는 걸 도와준다”고 했다. 정 동문은 “60대 중반에 건강이 썩 좋지 않아 보기 딱해 도와주다 보니 타자 치는 일은 내 몫이 돼 버렸다”고 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으신가봐요?
“대학 때는 조교들이 도와주고, 퇴임한 이후에는 이 사람이 해주다 보니 저는 원고지에 써서 불러주죠. 퇴임 후 시집도 몇 권 내고 상을 몇 개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특집기사나 인터뷰 등 할 일이 많아져요. 나는 빨리 못 하니까 눈치 봐서 아내에게 해달라고…(웃음) 아내가 제 시집 두 권을 독일어로 번역해 줬어요. 번역문학상도 받았지요. 실용독일어가 정말 쓸모가 있어요. 현대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하면 매끄러운 번역을 할 수가 없거든요.” (김광규)

-‘내조의 여왕’이세요.
“처음에 말씀드렸잖아요? 접대담당 상무, 타자담당 비서라고(웃음). 김광규 선생이 사회생활이 많지 않고, 청년 시절에는 수줍어하는 타입이었어요. 문단 정치도 못 하시고. 약속이 없는 날은 삼시세끼를 다 차려드려야 해요.”(정혜영)

“제가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보좌가 필요한데 마누라만한 보좌가 없지요. 항상 같이 다녔어요. 간혹 흉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좋아요. 우리가 15년간 한독문화교류에 많은 애를 썼어요. 교류 활동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초석이 됐지요. 둘이 처음엔 고단하게 시작했어요. 독일은 문서의 나라예요. 행사 준비하면서 편지를 1천통은 쓴 거 같아요. 모두 정 선생이 했지요.”(김광규)

-두 분이 잘 지내는 비결이라면.
“심리학자들 주장에 의하면 전혀 싸우지 않는 부부는 문제가 있는 부부랍니다. 피차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 거고 머지않아 갈라설 수도 있다는 거지요. 틈틈이 싸우고 화해해야 행복하게 오래 갑니다.” (김광규)


사진 촬영 전 정혜영 동문이 남편 김광규 동문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있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키셨나요.
“우리 때는 법대, 상대, 공대를 권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저희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셔서 독문과를 선택할 때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결혼 할 때도요. 저 역시 아이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어요.”(김광규)
“너무 터치를 안 해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나중에 큰 아들은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때 걱정을 많이 했죠. 가끔 가다 재수학원에 아들을 데리러 가면 당구장에서 나왔어요.(웃음)”(정혜영)

김 동문은 카푸치노를 주문하며 꿀을 달라고 했다. 정 동문은 “김 선생이 특이한 취향이 있는데 커피에 꿀을 넣어 먹는 거”라면서 “나도 전염돼 그렇게 먹는데 카푸치노는 꿀을 넣어 먹어도 괜찮다”고 권했다. 독특한 취향까지 닮아가는 천생연분이다. 김광규 동문은 기자에게 “자녀가 몇 명이냐”며 “제자들 주례를 설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둘이 결합했으니 둘은 낳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 많이 낳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광규 동문의 시 세계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겼다.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시구가 걸렸어요. 처음이시죠? 돈을 주나요?
“네. 강연료 정도 주더군요. 예전에는 무심히 어떤 시가 걸렸나보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더군요. 보통 2천 여 편의 시구가 올라오면 추리고 추려서 7명으로 꾸려진 선정위원회에서 최종 선택한다고 합니다. 기쁜 일이죠.” (김광규)

-교수님의 시 가운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죠. 4·19에 대한 단상이랄까.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 입학 후 한 달 만에 4·19가 일어났어요. 면학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죠. 아는 친구 몇 명이 죽기도 했어요. 4·19 묘지에 누워있죠. 그 친구들은 그 날 그대로 늙지 않는 채로 있어요. 일 년 뒤에는 5·16이 일어나고. 학교 다닐 때 군사훈련(교련)을 받았죠. 졸업 후 군대 3년 다녀오고 예비군 훈련 받고, ‘김신조 사건’으로 민방위까지 생겼어요. 군복을 완전히 벗은 게 나이 50이 돼서예요. 4·19 세대는 불행했어요. 일제 강점기부터 군사정권까지 난세를 모두 겪었죠.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고생도 많이 했고요.”

-올 초에 출간한 시선집 ‘안개의 나라’ 반응은 어떤가요.
“초판이 3개월 만에 매진되고 재판에 들어갔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시집이 재판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김광규 동문 시선집 '안개의 나라'



-선생님 시는 평이한 가운데 울림이 있어 좋습니다. 평온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인상도 받고요.
“결혼 이후에는 평온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죠. 제가 조용한 스타일이라서. 더러 현실 참여적인 시도 썼지만 그건 참다못해 쓴 거고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했죠. 시가 너무 평이해 ‘이게 무슨 시’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데뷔할 때도 그랬고요. 나중에 되풀이해서 읽으면 ‘이 속에 시가 있구나’ 알게 되죠. 내게는 나이 먹은 독자가 많아요. 시인이 쓰는 언어가 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언어는 평면 아니면 선이라고 생각해요. 공과 평면이 만나는 곳은 한 곳밖에 없죠.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곳이 그 접점인데, 시인이 그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요즘 많은 시인들이 알쏭달쏭한 소리만 막 쓰지요.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내요. 접점을 못 찾은 겁니다. 현실 생활 체험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김 동문은 그의 시세계에 대해 자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작(詩作)의 길은 변화보다는 지속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나온 11권의 시집을 살펴보면 전체가 대략 4-5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자연, 2부는 인간, 3부는 사회, 4부는 개인과 현실, 5부는 존재의 근원적인 미학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의 시집들이 대략 이러한 범주 내에서 동심원을 그려온 것 같다.”

-시집 11권, 산문집 2권 모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하셨어요. 이런 경우가 드문데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한 곳에서 계속 내면 나중에 전집 낼 때 편한 면도 있을 것 같고. 여기 저기 출판사 왔다 갔다 하는 일이 피곤하기도 하고요. 사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창비(창작과 비평사)의 원고 청탁으로 쓴 시였어요. 당시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창비가 폐간되면서 빛을 못 봤죠. 그 이후 창비와 인연이 없었는데 작년 1월에 창비에서 청탁이 와서 시를 썼죠. 30년 만이죠.”

-요즘 관심사는 뭔가요.
“시를 쓰는 일이죠. 노년에도 끊임없이 청탁이 들어와요. 제가 시를 빨리 못 써요. 정지용 문학상 받으면서 시 전문지 ‘시와 시학’에 김광규 특집이 나오는데 준비할 자료가 많아서, 그거 정리해 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으셨나요.
“‘그 손’이라는 시예요. 제가 단체에 가입한 곳이 없고, 문인 모임에 잘 나가지도 못해요. 올해가 정지용 문학상 30회인데 그동안 받은 분들을 봤더니 대개 연부역강한 분들이 많더군요. 갑자기 수상 통지를 받고 놀랐어요.”

-마지막으로 동년배 분이 총동창회장이 되셨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대정신에 부합돼 잘 된 것 같아요. 신수정 회장과는 독일과의 인연으로 몇 번 교류가 있었어요. 탁월한 연주자 겸 교육자일 뿐 아니라, 네트워크도 좋고, 책도 많이 읽으셔서 지적 자산이 풍부한 분이세요. 독일어도 유창하시죠. 기대가 큽니다.”

김남주 기자




김광규 동문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모교 독문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뮌헨에서 수 학했다.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래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서 최근 ‘오른손이 아픈 날’까지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밖에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누군가를 위하여’, ‘안개의 나라’, 산문집 ‘육성과 가성’,‘천천히 올라가는 계단’, 번역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학술 연구서 ‘귄터 아이히 연구’를 비롯해 다수의 번역 시집과 편저가 있다.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프리드리히 군돌프 문학상(독일 예술원), 이미륵상(한독협회)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이다.


정혜영 동문은

모교 졸업 후 이화여고 독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독일문화원과 뮌헨대학에서 주관 하는 독어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이후 독일문화원에서 통·번역 및 어학부 강사로 활동했으며 동아출판사에서 출간한 독일어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1981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2년 한양대 국제문화대 독문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0년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2 년부터 한·독 문학교류를 위해 힘써 왔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독일어로 발췌 번역한 ‘Die Tiefe der Muschel’, ‘Botschaften vom gruenen Planeten’를 비롯해 다수의 시와 소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번역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제5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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