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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2호 2018년 05월 (2018-05-16)

신수정 제27대 서울대총동창회장 인터뷰

“젊은 세대 목소리 들으려 88학번 부회장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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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수정 27대 서울대총동창회장 인터뷰 

“젊은 세대 목소리 들으려 88학번 부회장도 만들었어요”


대담 : 정성희 (국사82-86) 동아일보 뉴스연구팀장·본지 논설위원  

지난 5월 3일 동창회 사무실에서 신수정 회장(왼쪽)과 정성희 논설위원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27대 신수정(기악59-63) 총동창회장의 선출은 서울대인의 뉴스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뉴스였다. 총장도 아니고 동창회장 선출 소식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1969년 총동창회가 생긴 이래 처음 여성 회장이 선출된 것은 그만큼 신선한 파격이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카드였지만 뽑고 나니 너무 그럴 듯한 카드였던 셈이다.

신 회장 본인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사였기에 이 인사는 ‘컬럼버스의 달걀’에 비유되기도 한다. “동창회장에 여성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왜 못한 거지?” 총동창회장은 사회활동이 활발한 남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의식 저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리라. 신 회장은 여성이라는 점 말고도 첫 예술인 출신에다 처음으로 다양한 연령과 전공을 가진 30명 추대위원회를 통해 선출됐다는 점도 이채롭다. 70대 중반이기에 회장단이 젊어졌다는 의미도 있다. 아직도 얼떨떨해 있는 신 회장을 동창회 사무실에서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제27대 회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첫 여성 회장, 예술인 회장으로 동문들의 기대가 큽니다.

“제가 취임한 3월 26일은 베토벤이 타계한 날이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뜻깊은 날에 서울대 총동창회장에 취임하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직전에 음악대학 동창회장을 6년간 했습니다. 이제 그 직책을 정태봉 명예교수가 선출되자 저는 짐을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음대 동창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조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여전히 잠도 못 이루고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제 능력보다는 시대적 흐름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2년간 최선을 다하려고 할 뿐입니다.”

-신수정 총동창회에서 가장 달라지는 점이 무엇일까요.
 
“임광수 회장님은 큰 빌딩을 지어주셔서 관악회 재정이라든지 기반을 닦으셨고, 서정화 회장님은 동창회 사무시스템 등을 잘 구축해 놓으셨지요. 제 역할은 이 분들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 동창회가 조금 더 인성적이랄까, 소프트웨어 등을 좀 더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40만 동창회원이라고 부르는데 가능한 한 많은 동창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지요.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계속 자문을 구하고 있어요. 모교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의견도 수집하고요. 많은 분들의 지혜를 구합니다.” 

-취임사에서 동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동창회를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모교 출신 몇몇 인물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동창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런 뜻 보다는 동창회를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니라 공익의 가치를 실현하는 모임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모교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을 길러내려고 합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하는 말이 왜 있겠습니까. 모교가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사회적 기대를 생각할 때 서울대 졸업자 하나하나의 지성과 품격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동창회의 책무 또한 가볍다 할 수 없을 겁니다. 끼리끼리 모여 교분을 나누는 기존 동창회 이미지에서 탈피해 국가발전을 선도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창회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거창한 것보다는 가령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화공연을 개최한다든가 동창신문을 통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분들보다는 인류에 헌신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사는 동문을 발굴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동창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젊은 동문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인데요.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지요. 

“저의 분야인 음악대학의 경우를 보면 서울대를 나와 유학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인재 중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참 많아요. 도움의 사각지대에 있지요. 예술 분야가 특히 그래요. 그런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런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제공하면 어떨까 싶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과 예술 영재들을 연결하는 복지사업이 될 수 있겠죠. 젊은 동문에게 서울대 커뮤니티의 장점을 알리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문화이벤트도 마련할 것입니다. 조직적으로는 부회장단을 세대별로 골고루 배치해서 88학번까지 있습니다. 여러 세대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신임 회장에게 바란다’는 동문 설문 결과 지방과 해외 거주 동문에 대한 관심을 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만. 

“지방이나 해외에 있는 동문은 고립감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이분들을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새로 구성된 회장단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많이 찾아다니겠습니다. 관심을 표하고 애로 사항을 청취하겠습니다. 동창신문을 통해 지방과 해외에 계신 동문들의 소식을 고정적으로 소개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교는 지금 제27대 총장 선출로 분주합니다. 새로 선출될 총장이 학교를 어떻게 이끌어가기를 바라십니까. 

“모교가 법인화 됐지만 자율성이 늘어난 것보다 재정적 부담이 가중돼 법인화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재정 문제 해결과 아울러 학내 구성원 간의 소통에 더욱 신경을 많이 써주길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들을 받아들여 ‘선한’ 인재로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서울대가 갈등은 적고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면 동창회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1세대 피아니스트, 26세에 모교 최연소 교수 임용, 최초의 여성 음대 학장 등 회장님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음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피아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교육자셨던 부모님께서는 어느 부모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형제들을 위해 많은 희생 속에 살아오셨습니다. 아버님(신집호 행대원64졸)은 특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셨어요. 옥천여중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실 때 학교에 구호물자로 받은 낡은 피아노가 있었어요. 어머니(김석태 경성사범39졸)가 학교 다닐 때 교사들이 일본 학생에겐 피아노를, 한국 학생에겐 오르간을 가르치는 등 차별을 받으셨대요. 그런 경험 때문이신지 학교에 있는 피아노를 가르침 받게 됐습니다. 함께 시작한 동생 수희(회화62-66)는 그림에 재주 있다고 해서 그림으로 빠지고요.”

-회장님의 프로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제1회 이화-경향 콩쿠르 우승인데요. 6·25 전쟁 시기에 어떻게 콩쿠르가 열렸는지 궁금합니다.  

“1952년이었죠. 당시 이화여고 교장이던 신봉조 선생님과 임원식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선각자이셨죠. 그때 임시수도 부산에서 제1회 이화-경향 콩쿠르를 만드셨습니다.  피아노 부문 응모자만 40명이 넘었는데 청주에서 신문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신청하셨어요. 그때 1등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누나 김덕주 씨였고요. 한동일, 이경숙 씨도 그때 함께 입상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부산 이화여중을 다니고 53년 환도 후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1학년짜리가 객지 생활이 힘들어 청주를 내려온 뒤에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레슨을 다녔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영재로서 자질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피아노를 접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이지만 어린 시절엔 바보였어요. 지금도 똑똑하진 않지만…(웃음). 사람들은 저더러 월반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일찍 학교에 들어갔어요. 부모님께서 교사이시다 보니 저를 맡길 데가 없어 여섯 살에 들어간 거죠. 나이 많은 급우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남보다 일찍 시작하다보니 빨리 끝내게 되었고 스무 살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어요.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했는데 다행히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장학금을  받게 되어 음악의 도시 비엔나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저더러 최연소 교수라고 하는데 최연소 교수라고 하면 몇 달 차이지만 국악과 이재숙 명예교수가 먼저입니다. 음악대학에 여자 교수가 많고 여학생도 많은데 제가 2005년에야 여성 최초 음대학장이 되었어요. 음대 학장을 하면서 다른 대학과 본부와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예술가는 괴짜여서 조직을 끌고 나가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 가운데 괴짜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웃음). 누구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틀림없습니다. 괴팍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술외길을 가다보면 그렇게 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저로 말하자면 음악을 위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을 위해 음악을 한다는 게 신조입니다. 피아노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으면 더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만, 삶이 제게 준 다양한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준 친구들, 학교, 유학 기회… 이런 것은 너무나 분에 넘치는 것들이어서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서울대 총동창회장을 맡아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도 이런 차원일 것이다.


총동창회 첫 여성·예술인 회장
기부늘며 ‘새회장 효과’ 나타나

문화이벤트로 젊은 동문 흡수
공익 가치 실현하는 동창회로 


-예술가로서 자양분이 된 것은 무엇인가요.

“독서와 교우관계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릴 때 부모님이 사다주신 ‘소공자’, ‘소공녀’ ‘베토벤의 생애’부터 사춘기에 읽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읽은 ‘베르테르의 슬픔’까지… 주로 문학작품이긴 하지만 이런 인문학적 토대가 예술의 자양분이 되어주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되었겠지요.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데 시력이 나빠진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로 언론인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 중학교 때 짝이었던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의 저자 장선용,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나 일생동안 제일 친했던  친구 김미자. 이 친구는 동아일보 견습기자로 합격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언론인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요. 12년 전 타계해 지금도 슬퍼요 . 우리와 유명을 달리한 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등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신 회장의 친구 얘기는 끝이 없었다. 그만큼 사람과의 인연을 귀하게 생각하고 친근한 성품이라는 점이 다가왔다.

-최근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으로 더 유명해지셨는데….

“인연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거예요. 지금은 더 엄격하지만 그때도 서울대 교수는 개인레슨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성진 군을 소개받은 시점이 정년 후였기 때문에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웠어요. 성진 군은 타고난 재능에다 노력까지 더해졌고 무엇보다 태도와 성품이 훌륭해요. 말하고 싶은 건 성진이를 제가 키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년이 동창회 창립 50주년입니다. 예술계에 인맥이 넓으셔서 뜻깊고 멋진 행사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민이 많습니다. 1969년 2월 12일 창립총회에서 고 박두병 초대회장 취임 이후 9명의 회장님들이 동문 화합과 모교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이분들을 재조명하는 등 동창회 역사를 살펴보고 동문들의 의견을 수렴해 서울대동창회의 발전방향 등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장학금을 기부해주신 분들을 기리는 행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제가 모을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적극 활용해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창립 50주년에 회원 40만명의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해온 서울대 총동창회는 다양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여성 회장의 취임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에 부응하는 것은 오롯이 그의 능력에 달린 일이다. 벌써부터 동창회에 기부가 늘고 있다니 ‘신수정 효과’가 시작된 듯하다. 이 상큼한 출발이 끝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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