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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2호 2018년 05월 (2018-05-16)

영웅은 죽어서 탄생한다

명사칼럼 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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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외교67-71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전 국회의장


김 구,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다


1896년 초봄, 기울어져 가던 나라의 한 청년이 어느 나루터 여관에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두루마기 밑에 칼을 숨긴 일본인을 맨손으로 처단했다. 일인의 몸에서 나온 거금 800냥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 주라 이른 청년은 그 현장에 “황해도 해주 텃골 김창수가?국모보수(國母報讐)를 위해 이 왜놈을 죽였노라”고 방을 써 붙였다. 국모보수, 바로 민비(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고 당시에는 시신도 찾지 못한 치욕과 분노의 사건(을미사변, 1895년)에 대한 복수였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나라가 온통 들끓었던 해다. 김창수는 김 구의 청년기 이름, 그의 나이 21세였다.


김 구는 일생의 스승이었던 유학자 고능선으로부터 “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더럽게 망한다”는?울분에 찬 훈시를 듣고 스승과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굳게 결심한다.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一死報國)하기로.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김 구는 스승으로부터 각인된 평생의 경구(警句)를 되뇌며 최종 결심을 굳힌다. “절벽에선 붙잡은 나뭇가지마저 놓아버려라!” 그는 국모(명성황후)의 비참한 최후에 항거하는 조선인의 결기를 증명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기로 마음먹는다.?청년 김 구를 일약 전국적 인물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그렇게 탄생했다.


‘국모보수’는 안중근 의사가 그로부터 15년 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며 내세운 15개 이유 중 첫 번째였다. 을미사변은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것이다.


이봉창, 죽음으로 영원한 쾌락을 얻다


“내 나이 31세, 그동안 온갖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얻고자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일본인 행색의 노동자 이봉창이?첫 대면에서 김 구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일본 천왕을 죽이겠노라는 결의를 밝혔고, 최소 1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김 구의 지침에 따라 때를 기다린다. 이따금씩 자기가 공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끼니도 거르는 가난한 임시정부 직원들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면서.


그로부터 1년 후 첫 공작금이 이봉창에게 전해졌고, 며칠 지나 그는 김 구를 다시 만났다. “선생이 허름한 바지춤에서 거금을 꺼내 제게 줄 때 눈물이 나더이다. 상해 조계(租界)를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선생은 제가 이 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달아나 버려도 어쩌지 못하겠지요. 내 평생 이런 신뢰를 받아보긴 선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반드시 대업을 완수하겠습니다.”?이봉창은 도쿄로 가 천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그해(1932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윤봉길, 역사의 시계바늘을 움직이다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서니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丈夫出家生不還).” 사랑하는 처자에게 이 글귀를 남기고 망명길에 오른 23세 청년 윤봉길. 그는 이봉창 의거?직후 김 구를 찾아왔다. 그가 채소 장수를 하던 상해의 홍구공원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곳이 될 줄이야.


1932년 4월 29일, 역사의 날이 밝았다. 윤봉길은 김 구가 미리 부탁해둔 동포의 집에서 “마치 새벽 일하러 가는 농부처럼” 아침밥을 든든히 먹는다.?그러고는 거사 자금으로 산 새 시계를 김 구의 헌 시계와 바꾸자고 한다. 자기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 필요 없다면서. 택시를 타기 전 윤봉길은 주머니를 털어 “차비를 내고도 여유가 있으니 염려 말라”면서 가진 돈을 김 구에게 건넨다. 김 구는 목이 메어 작별 인사를 한다. “훗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날 홍구공원의 일본 천왕 생일 축하 및 상해사변 기념식은 윤봉길 의거로 인해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미국인 피치 씨 부부 집에서 은신하던 김 구가 성명서를 발표할 때까지 윤봉길은 갖은 고문 속에서도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 두 눈을 가린 채 형틀에 묶여 원수의 나라 하늘 아래에서 총살당한 그의 품속에는 나무 십자가가 동행했다.


새로운 시대, 누가 영웅이 될까


위 세 편은 ‘백범일지’를 중심으로 엮어본 것이다. 김 구와 이봉창·윤봉길, 이 세 사람은?서울 용산 효창공원 안에 묘소가 모셔져 오늘도 지하에서 나라 걱정을 하고 계시다. 안중근 의사 가묘도 그 옆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의 영웅, 반신반인(半神半人)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죽지 않는 편안한 길과 죽을 수밖에 없는 영웅의 길 중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렇듯 영웅은 죽어야 하고, ‘영웅적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비로소 영웅이 된다. 영웅 흉내만 내려 하거나 결과가 아닌 동기와 과정으로?영웅 대접을 받으려 해서는 일도 그르칠 뿐만 아니라 평도 나빠진다.


바야흐로 남북 간에 새 시대 새 역사를 여는 영웅적(?) 대화가 시작됐다. 잘하면 한반도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영웅이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웅은 반드시 사후(死後-事後)에 탄생한다는 것이다. 떡과 과일부터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온몸과 온 마음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영원히 살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또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왔을 때 전력을 다해 매진해야 한다. 지금이 그 기회이다.


그러나 그 앞에는 수많은 도전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며 결코 ‘실패한 영웅’들의 전철(前轍)을 되밟지 말아야 한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성공도 못하고 영웅도 되지 못한다.
남북한의 평화 통일, 김 구 선생이 역설한 나라의 완전한 독립이 영웅들의 애국심과 희생적 노력을 불쏘시개 삼아 마침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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