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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9호 2018년 12월 (2018-12-18)

“고통에도 총량이 있어 내가 받으면 남이 덜 받을 수 있지요”

서울대 사회봉사상 수상 손봉호 모교 명예교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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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도 총량이 있어 내가 받으면 남이 덜 받을 수 있지요”

서울대 사회봉사상 수상
손봉호 모교 명예교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손봉호(영문57-61) 모교 사회교육과 명예교수는 교계를 넘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우리 시대 어른이다. 기아대책, 푸른아시아 등 10여 개 단체의 이사장 직함이 이를 잘 보여준다. 중장년 시절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창립을 주도하는 등 시민 운동에 앞장섰다. 존경의 바탕엔 약자 보호를 위한 실천적인 시민운동뿐 아니라 쉽게 설명하는 종교·철학 집필 활동(강연 포함)이 있다. ‘고통받는 인간’, ‘나는 누구인가’ 등은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여 앞둔 11월 27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 인근 나눔국민운동본부 집무실에서 손 동문을 만났다.



-최근 서울대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지요.
“서울대 출신 중에 음지에서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과분하게 제가 받았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설교를 많이 하셔서 목사로 알고 있는 분들도 계세요.
“아닙니다. 장로인데, 그것도 은퇴 장로입니다. 다니엘 새시대 교회라고 장애인들이 많이 오는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예배도 장애인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요.
“복지 관계 일을 많이 맡다 보니 그와 관련된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관심사라면 역시 사회 윤리 문제지요. 두 문제에 대해 강연과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여러 복지 단체의 이사장을 맡고 계셔서 기부 부탁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제일 괴로운 일이에요. 시민운동 할 때부터 가장 큰 숙제였죠. 시민 운동이란 게 겉보기와 달리 들어가서 보면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 단체의 전임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저는 돈 모으는 데는 재주가 없어요.”

-최근 책 ‘나는 누구인가’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 책이 1987년에 나와 2판 15쇄까지 나왔으나 절판이 됐습니다. 최근에 영어로 번역할 계기가 생겨 살펴보니 그동안 세상이 바뀌고 관점도 다소 확대돼 내용의 일부를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어요. 아직도 책을 찾는 독자가 있다는 말에 샘터사와 합의해서 개정판을 내게 됐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현대인에게 기독교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좀 더 인간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기독인들에게 ‘나는 누구고, 왜 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교수님 책 중에 ‘고통받는 인간’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고통이란 주제를 이렇게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구나, 놀라웠습니다.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서는 많이 썼는데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안 썼어요. 신학자나 문인들이 많이 썼죠. 놀라웠어요.”

-고통을 감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의 정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고통에는 구속(救贖)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구속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이지요.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당할 고통을 대신 받는다는 요소가 있다’, 막스 뮐러의 주장입니다. 제가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 만든 가설이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 입니다.(웃음) ‘온 인류가 받는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내가 고통을 받으면 다른 사람의 고통이 줄어들지 않겠나.’ 이런 가설 하에서 살면 고통도 좀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고통의 의미를 광범위하게 펼쳐보면 누려야 할 행복을 덜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절제하는 만큼 다른 이들의 고통이 줄게 되겠지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설교 부탁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신지요.
“최근에 와서 사랑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게 있습니다. 보통 사랑은 나의 감정에 초점을 두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아가페 사랑은 나의 감정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이 기준이 돼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상대방에게 이익이 안 되면 사랑이 아닙니다. 최근 ‘약자 중심의 윤리’란 책을 쓰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윤리는 내가 착한 사람이 되는 것, 내가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 그게 중요했습니다. 동서양이 다 그렇습니다. 윤리는 다른 사람이 해를 안 당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자지, 주체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로 피해를 보는 타자는 약자예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초점이 놓여야 한다’ 그걸 강조하고 싶어요.”

-교계에 쓴소리도 많이 하시지요. 약자들에 대한 구제보다 안에서 쓰는 돈이 더 많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헌금의 70%까지 구제, 선교에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몇 % 이상은 구제를 위해 쓴다는 원칙을 정해 놓고 내부의 낭비를 줄여야 합니다. 행사 줄이고 내부 장식에 덜 쓰면 됩니다. 검소하게 하면 할 수 있지요. 기독교인의 검소, 절제는 무척 중요한 덕목입니다.”

-교회는 언제부터 다니셨나요? 부모님의 영향인가요?
“부모님은 기독교인이 아니셨어요. 친구 따라 중학교 때 처음 교회를 갔습니다. 신앙심은 고등학교 가서 생겼고요.”

-대학시절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짐작하시겠지만 꽁생원이었습니다. 술, 담배, 연애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어요. 당시 동기 이명섭, 서영호가 저와 같은 무리였는데 제가 꼴찌였습니다.”

-학생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셨던데.
“4·19 사건 나니까 학과에서 데모한 사람이 우리 셋뿐이었어요. 최루탄 마시고 많이 두들겨 맞았죠. 4·19 끝나고 ‘새생활 운동’이라고 해서 돌아다니면서 양담배 뺏고, 커피 엎지르고…(웃음) 그런 시절도 있었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세요.
“대학원 1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군수물자를 지키는 경비중대서 복무를 했습니다. 이병부터 간부까지 훔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군대가 저에게는 첫 세상이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기독교 교육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보냈습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던데.
“신학을 하다 보니 철학적인 물음이 계속 뒤따라와요. 학비가 없는 자유대학에 연락을 해서 입학허가를 받았죠.”

-자유가 넘치는 나라에서 적응은 잘 하셨나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다들 기독교인들이었고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들은 거기에 있습니다. 젊은 시절 8년을 있었으니까요. 조교도 하면서 완전히 그 속에 들어가 살았죠. 네덜란드가 자유롭다고 느낀 게 시험에 대해 정해진 룰이 없어요. 준비되면 언제든 교수 앞에 가서 시험을 보는 겁니다. 정신 안 차리면 한없이 늘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죠. 철학을 하려면 원서를 꼭 봐야 한다고 해서 영어, 불어, 독일어 공부하느라 고생을 좀 했지요.”

-한국에 오셔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시민운동을 열심히 하셨지요.
“70년대부터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분들 옆에서 보면서 그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게됐어요. 고통에 대한 관심도 거기서 출발했고요. 개인적 차원의 고통은 해결 방법이 있는데 구조나 제도의 비도덕성으로 인한 문제는 답이 쉽지 않아요. 시민운동에서 실마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기윤실, 경실련,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 등의 단체를 조직하는 데 큰 관심을 쏟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일탈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요.
“의도적으로 일탈하고 싶었던 적은 없고요. 동덕여대 총장 할 때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 양심을 지키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객관적으로 분명히 잘못한 일이라서 그에 대한 처벌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어요.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야만 총장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남매를 두고 있어요. 아들은 철학과 교수고 딸은 프리랜서 상담사입니다. 아들(손화철(철학90-96) 한동대 교수)과 며느리(변수현(독어교육90-95) 부산외대 교수)가 동문입니다. 수학 교사로 은퇴한 동생 손재호도 농대를 나왔습니다. 처가 쪽으로도 동문이 많습니다.”

-손주에게 자주 하는 말씀은요.
“고3, 중2 된 손녀가 있어요. 공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말자 스스로 금기시 하고 있어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매일 영어 성경 한 줄씩만 읽어라’ 그 정도입니다.”

-내년 계획이라면.
“일을 좀 줄여야지요. 이사장을 12개인가 맡다 보니 회의가 몰릴 때는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오늘 어떤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러 나라의 행복의 조건을 조사했더니 첫 번째는 건강, 두 번째는 경제적 여유로 다들 비슷하더랍니다. 그런데 세 번째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가족, 친구, 취미 등을 말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라고 했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정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인정 못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소리지요.

아무래도 우리는 특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특혜 받은 사람이 자기 행복에만 몰두하면 못 받은 사람들이 서럽습니다. 특혜에는 큰 책임과 의무가 뒤따라야지요. 당연한 소리지만 80 평생 살다보니 그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요.”

김남주 기자




손 동문은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모교 졸업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 교수를 거쳐 모교 사범대학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다. 한성대 이사장, 동덕여대 제6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고신대 석좌교수, 모교 사회교육과 명예교수이며,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손 동문은 시민운동의 물길을 연 선구자이다. 1980년대 중반 기독교인만이라도 선거 부정을 막아보자는 뜻에서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만들었고,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족에 참여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을 출범시켜 군 부재자 투표를 영외에서 하도록 했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중 유세 대신 TV토론을 도입하는 등 선거법 개정에 크게 기여했다.

밀알선교단, 샘물호스피스, KBS강태원복지재단 등의 이사장으로 복지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남북나눔운동 등 북한 돕기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몽골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하는 푸른아시아와 한국에 유학 온 가난한 외국 학생들을 후원하는 국제학생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엔재단과 손잡고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는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문화사), ‘꼬집어 본 세상’(철학과현실사), ‘나는 누구인가’(샘터), ‘고통받는 인간’(서울대 출판부),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CUP)’ 등 4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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