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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작가의 정원

제 489호 2018년 12월 (2018-12-18)

작가의 정원 <마지막회> 허난설헌 생가터, 그 단아하게 비워둔 공간

문현주 가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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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정원 <마지막회> 허난설헌 생가터

그 단아하게 비워둔 공간




강릉시 초당동에 가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집터에 단아한 한옥이 있다. 집터이니 그녀의 옛집이 보존된 것은 아니다. 이곳은 후대에 누군가가 건물을 헐고 새로 집을 지었기는 하지만 허난설헌 생가터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에 등록되어 있다.

허난설헌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여성 시인이자 예술가이다. ‘난설헌’은 호이고, 이름은 ‘초희’이다. 그녀는 조선 중기에 정치가이자 소설가로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던 시대라 그녀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안타깝게 그녀가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동생 허균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18년 뒤인 1606년에 최초로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었지만 2000년에 들어와 드라마, 연극 등으로 다양하게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국립발레단은 그녀의 작품 중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무용화하여 허난설헌의 시와 삶을 이야기하였다.

그녀의 생가터에 도착하니 주변이 소나무 숲이라 청량한 분위기이다.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내판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울타리 밖에 우물이 있고 그 옆에 협문이 보인다. 우선 그 문으로 들어갔다. 문지방 안쪽에 고운 미사토로 단단하게 다져져 있는 작은 마당이 나온다. 마당에는 담장 넘어 서있는 큰 나무가 그 바닥에 멋진 그림자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마치 햇살 좋은 날이라며 나를 반겨주는 ‘마중 마당(?)’ 같다. 나는 곧장 보이는 안채를 잠시 훑어보고, 오른쪽 쪽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반듯하니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마당이 펼쳐진다. 담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먹색의 기와가 안과 밖을 선명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담을 따라 옥잠화의 연두색 넓은 잎이 넉넉하게 심겨져 있다.
안채의 후원인 뒷마당을 지나니 사랑채 쪽으로 낮은 담이 쳐져 있다. 내외담이라고 한다. 이는 집 외곽에 쌓는 울타리 개념의 담장이 아니며 집 안에 쌓는 내담이나 샛담 개념의 담장이다. 이는 대문에서 사랑채로 향하는 손님이 안쪽을 직접 볼 수 없게 가림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채 앞으로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솟을대문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마당을 따라 뒷문 쪽에서 앞문 쪽으로 거꾸로 둘러보고 있는 셈이다. 주차장 위치 때문이기는 하였지만 나에게 걸맞은 길인 듯하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조선시대에 남자들은 솟을대문을 이용하였고 여자들은 우물간 옆의 협문으로 출입하였단다. 그러니 나는 얼떨결에 예를 차리게 된 셈이다.

이곳의 정원은 안마당, 행랑마당, 뒷마당, 사랑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은 건물과 담장으로 반듯한 공간을 만들어 정갈하다. 그리고 담장을 따라 화단이 있고 높낮이가 다른 화초들이 나지막이 자리하고 있다. 뒷줄에는 5월에 화려하게 피었을 작약이 이제는 싱그러운 잎새로 패랭이 꽃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리고 벽을 따라 담쟁이는 황토빛 바탕에 멋진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 초봄의 연두색 새싹, 한여름의 진한 초록색 그리고 가을의 붉은 단풍이 멋스럽게 계절을 알린다. 소박한 우리 마당의 모습이다.

사실 우리의 마당은 서양의 정원과는 조금 다르다. 특히 주택에 있어서는 화단과 잔디밭을 위주로 조성하는 서양 정원과는 달리 우리는 정갈한 마당이 있다. 그 마당에는 햇볕 가득 담아 고추도 말리고, 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렀다. 그래서 비워 두었다. 우리 마당의 맛은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일반적인 서양 정원의 잣대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는 터만 남은 그녀의 집에서 무언가 아쉬워 다시 안채에 딸린 뒷마당의 좁고 긴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아직 햇살이 좋아 이곳도 마당에 나무 그림자가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바람이 솔솔 부니 잎새의 그림자가 조금씩 흔들리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슬며시 어린 그녀, 허난설헌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단아하게 비워둔 공간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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