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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4호 2019년 05월 (2019-05-17)

녹두거리에서: 말 없는 가르침, 이상옥 선생님께

공강일 한국교육평가인증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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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가르침, 이상옥 선생님께





공강일

대학원08-10

한국교육평가인증 수석연구원·자유기고가



이상옥(영문58졸 모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12년 5월께로 이효석 전집을 재출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이다. 첫 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채정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 동료인 이지훈 선생과 나보령 선생이 합류했다.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을 꾸렸고, 다섯 해 동안의 작업을 거쳐 ‘이효석 전집’을 상재했다.


전집을 처음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재출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원문과 이본 등을 비교하고 교정하여 원문에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을 출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상옥 선생님은 기왕이면 정본 전집을 출간하고 싶어 하셨고, 이효석문학재단 측에서 이러한 선생님의 뜻에 선뜻 동의해주었기에 이 일은 가능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정본 작업’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본 팀’이라고 불렀다. 매주 두세 번 정도 모여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상옥 선생님은 지각이나 결석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선생님은 교수로 재직하시는 동안에도 강의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 분이라면 으레 당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선생님은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나를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이해해주셨다.





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단지 참여만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를 해오셨고, 원문의 어려운 한자는 물론 활자가 흐릿하여 어린 나조차 알아보기 힘든 글자까지 읽어내셨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법이 없으셨고, 우리가 내놓는 의견을 귀담아 들으셨다. 선생님은 아침 10시부터 때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이 지난한 작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팀에 활기를 불어넣으셨다.


정본 작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재단 측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 전집에 편자나 감수라는 명목으로 당신의 이름을 올릴 법한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다. 어떤 영광도, 명예도, 이익도 없이 선생님은 정본 작업에 열정을 쏟으셨고,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셨다.


선생님은, 나이로 치자면 우리보다 서른 살 이상 더 많으시고, 고작 박사 학위를 막 받았거나 박사 수료생인 우리와는 격이 다른 위치임에도 모든 팀원들을 동등하게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의 지식은 넓고 깊어 이야기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듣는 법을 잊지 않으셨고, 토론을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다. 심지어 나와는 정치적 견해도 달랐지만, 선생님은 설익은 내 말을 들어주셨고, 내 생각을 존중해주셨다. 지금도 그러하시다.


나는 평생 이처럼 고고(高高)하며, 학학(鶴鶴)한 분을 뵌 적이 없다. 나는 원체 막돼먹어 누군가를 존경할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아왔다. 이상옥 선생님은 그런 내게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주셨다. 이상옥 선생님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비단 나의 사견만은 아닐 것이다. 정본 출판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매년 서너 번의 모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우리 정본 팀 역시 이상옥 선생님의 성격에 감화된 듯하다.


올해 5월, 우리 정본 팀은 일본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선생님은 이 여행을 일종의 시험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함께 오래 여행을 할 수 있는 ‘족속’인지 서로 알아보자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이 시험에 통과한다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영국 여행을 실행에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옥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고, 선생님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신 적도 없다. 선생님은 내게 그저 당신의 행동만으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셨다. 이러한 선생님을 더 자주, 더 오래 뵐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공 동문은 모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모교와 국민대에서 강사를 지냈으며 저서로 '시, 현대사를 관통하다'(공저)가 있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경북매일신문에 매주 금요일 칼럼 '공강일의 바람의 경치'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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