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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4호 2019년 05월 (2019-05-17)

죽어야 산다

김형오 외교67-71 전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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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김형오 전 국회의장

 


스무 살 청년 김구는 국모(명성황후)가 무참히 살해당한 데 대한 울분으로 한 일본인을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국모보수(國母報?)’ 사건이다. 그는 맨몸이었으나 상대는 칼을 품었고 안내인도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것은 “벼랑에 떨어져서는 나뭇가지 붙잡는 게 대수가 아니다, 그 잡은 가지마저 놓아버려야 진정 장부이다”라는, 스승이 가르쳐 준 경구였다.(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


김구는 백성 된 도리를 다하고 죽는 길을 택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제국주의의 침략 만행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죽음인들 마다하겠는가.


우리 애국자들은 그랬다. ‘백범일지’와 이를 풀어쓰기한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는 죽음으로 향하는 애국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할수록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한 그분들 생각이 자꾸 난다.


애국자는 이렇게 죽는다


“이 에미는 현세에서 너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본에 항소 따위 하지 말고,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안중근 의사에게 수의(壽衣)를 지어 함께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다. 자식에게 ‘죽어라’고 말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통분이 가득했을까.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는 이렇게 자식을 길렀고 애국자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제 나이 이제 서른한 살,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견준다면 무슨 낙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는 독립 사업에 몸을 바쳐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해 이곳 상하이(上海)에 왔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김구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일본 천왕 살해 계획을 말하고 직접 폭탄을 던진다. 그리고 영원한 쾌락의 길로 나간다.


그 몇 달 후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찾아온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에 자식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다. “너희도 만약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25세에 삶을 마감하면서 “강보에 싸인” 두 아들(네 살, 두 살)에게도 죽을 길을 가라 한 아버지다. 이런 위인들을 회상하며 졸저를 쓸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죽으려 했나? 도대체 나라가 무엇인데 독립을 쟁취하려 목숨을 걸어야만 했나? 어느덧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이 요란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가슴 속은 여전히 휑하다. 지금의 이 나라가 선열들이 목숨을 던지며 찾고자 했던 과연 그 나라인가?


이 나라를 위해, 아니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떼법과 조직 논리에 매몰되어 부정에 눈 감고 불의를 정의라고 우기지는 않는가? 통일이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압제와 가난,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은 계속 외면해도 되는 건가? 선열들이 독립을 외치며 갈구했던 자유와 민주, 평화와 평등이 가득한 나라인가 아닌가?


그 시대 그들의 뇌리 한가운데 박힌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면 “죽자꾸나 시대”와 “죽어가는 시대”, 오직 두 시대의 삶만이 전부였다. 죽음이란 자기희생이다.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 이름 없이 값 없이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조국과 동포에 대한 무한 사랑과 신뢰가 깊었기에 죽음 건너편의 밝은 세상을 향했던 것이다.


정의로 포장된 증오와 분열의 정치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반쪽이지만 어엿한 나라도 있고 당당한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이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살벌 투쟁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가 독립투사라도 된 듯 착각하고, 상대는 제거돼야 할 일제 주구세력인 양 대한다. 자기희생은 어디로 가고 남의 희생과 복종만 강요한다. 애국·정의·평화가 ‘거짓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우리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에서는 불꽃 튀는 논쟁을 했고, 임시정부는 정파를 초월해 구성·운영되었다. 해방된 조국의 제헌국회는 1년 중 320일 의사당의 불을 밝혔다. 휴일도 반납했다. 지방 출신들은 여관방에 묵으며 집단 출퇴근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굳건히 키워나갔다. 요즘 국회와 정치는 어떤가. 제 나라 제 국민에 대해 의견이 다르고 원칙이 갈린다 하여 적대적으로 몰거나 제거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참으로 불량하고 위험스럽다. 국민에게 사랑 대신 증오를, 포용 대신 분열을 획책하며 권력 장악과 유지에 골몰한다. 리더십은 실종되고 갈등은 증폭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부들도 갈릴 대로 갈리고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권력자에서부터 노동 계급까지 모두가 약자이거나 약자 편에서 싸운다는 사람들뿐이다. 막강 권력에 부(富)까지 장악한 자들이 시대의 양심인 양, 정의의 수호자인 척 뻔뻔하게 설치면서 명예와 신뢰가 추락하는 줄도 모른다. 진정한 약자들은 계속 이용만 당하니 더 움츠러들고 더 약해질 뿐이다. 안팎 숯검정들이 흠집 있는 사람을 찾으러 설쳐대니 인심은 말라가고 세상은 무기력에 빠져든다. 백범과 선열들이 꿈꾸던 “문화가 강한 나라”가 되려면 (문화)시민의식부터 먼저 갖추어야 한다. 갈가리 찢긴 민심, 극도의 이기주의와 실종된 공동체 의식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아니 나라는 그럴 때 무너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전 재산을 헌납하고, 온몸을 불사르며 처절한 삶을 살았던 독립투사 순국선열에 대해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분들이 하늘에서 오늘의 위정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그렇다, 남부터 죽이려 들지 말고 나부터 먼저 죽자. 권력과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분들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래야만 이 나라 이 공동체가 (겨우)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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